최후의 만찬 | 화폭에 담긴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최후의 만찬(영어: The Last Supper, 라틴어: Novissima Coena, 불어: La Cène)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희생되기 전날 저녁, 열두 제자와 함께 마지막으로 나눈 식사를 모티브로 한 미술 작품을 가리킨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화폭에 담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장면을 감상해보자.
목차
1. 최후의 만찬 – 성경을 모티브로 한 예술 작품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 최후의 만찬 제작 배경
– 최후의 만찬 그림 해석
3. 성경 속 최후의 만찬 이야기
– 유월절 준비와 최후의 만찬 음식
– 유월절에 세운 예수님의 새 약속
최후의 만찬 – 성경을 모티브로 한 예술 작품
최후의 만찬 그림은 성경의 절기 유월절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되기 전날이었던 유월절 저녁,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열두 제자와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눈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하거나 제목으로 붙인 미술 작품 중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벽화가 가장 유명하다.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장면은 2천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한 기법과 구성으로 다뤄졌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가장 오래된 작품은 2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탈리아 로마의 도미틸라 카타콤베(Catacombs of Domitilla) 벽화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제자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기도하는 손’으로 유명한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틴토레토(Tintoretto)’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야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 ‘프랑스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인 스페인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등이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제작 배경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회화 역사의 새 지평을 연 독보적 걸작”,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뛰어난 성과” 등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명작으로 손꼽힌다.
다빈치는 피렌체공화국에서 명성을 떨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활동하다 밀라노로 이주한 후 당시 밀라노공국을 지배한 스포르차가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다빈치는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로부터 의뢰를 받고 1495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내 레펙토리움(Refektorium, 수도원의 식당) 북쪽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해 2년여에 걸쳐 완성했다. 다빈치가 구상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라면 4년이라는 설도 있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작업할 때 많은 사람이 몰려와 구경했다고 한다. 구경꾼 중 한 사람이었던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도미니크수도회의 수도사 마테오 반델로(Matteo Bandello)는 “그(다빈치)는 거기에 새벽부터 왔다가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 잠시도 붓을 놓지 않고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팔짱을 끼고 서서 그림을 스스로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매일 몇 시간씩 작품을 주시하는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나흘을 보내기도 했다. … 그늘에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발판을 기어올라가 붓을 잡고는 두세 번 붓질을 하고 나서 돌아가는 것도 보았다”고 회고했다.
다빈치가 수도사들의 구내식당 벽에 그림을 그린 덕분에 수도사들은 날마다 식사를 하면서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담아내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화판은 수도원의 식당 벽면이었는데, 다빈치는 그림 속 인물들을 실제 크기와 동일하게 그림으로써 수도사들이 함께 만찬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최후의 만찬 그림의 크기는 가로 880cm, 세로 460cm이며 유채와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해 그렸다. 템페라는 안료를 달걀, 아교, 벌꿀, 무화과나무의 수액 등으로 녹여 만든 불투명한 그림물감으로, 당시에는 주로 프레스코(fresco) 기법이 사용되었다. 프레스코 기법은 젖은 벽에 안료를 칠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단점이 있었고, 템페라 기법은 마른 벽에 제한 없이 그리는 대신 쉽게 벗겨지고 손상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은 완성한 지 몇 년 후부터 들뜨고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의 그림은 1999년에 복원된 것이다.
최후의 만찬 그림 해석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시간이 멈춘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아낸 찰나의 장면은 2천 년 전 유월절 저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열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눈 그 몇 시간 동안의 사건 속에서도 예수님이 제자 중 하나가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순간이라고 한다.
성경은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하자 제자들은 슬퍼하며 저마다 “주여, 나입니까?”,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는다.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예수님이 지목한 사람은 가룟 유다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작업하며 기법뿐만 아니라 구도와 주제까지 기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전체적인 구도는 수학자이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답게 치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구성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두고 원근법을 적용해 배경으로 넣은 창문과 벽은 생생한 원근감을 느끼게 한다. 12명의 제자는 세 명씩 나누어 네 무리로 배열했다. 당대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가 같은 주제를 작업할 때 유다를 식탁의 건너편에 위치하도록 그려 넣은 것과는 달리 새로운 구도로 인물들을 배치한 것이다. 아직 유다의 죄가 드러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또, 기존의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신’이라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 반면, 다빈치는 해당 장면을 담되, 화면의 조형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다빈치의 작품에 묘사된 3개의 창문, 네 무리의 열두 제자가 각각 삼위일체, 사복음서,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수년을 동고동락한 자신들 중에서 누군가가 배신을 한다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제자들이 두려움과 의심, 불안과 당혹감에 휩싸인 뒤숭숭한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다빈치는 제자들의 표정과 몸짓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해부학적 연구와 성경에 나타난 제자들의 성격을 파악한 후 제자들의 생김새를 결정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 속 인물들의 배치는 왼쪽부터 바돌로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안드레,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님,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 마태, 다대오, 시몬 순이다. 각각의 몸짓과 표정은 어수선한 당시의 상황을 현장감 있게 전해준다.

그림의 중심축인 예수님의 오른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은 요한이다. 요한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베드로의 얘기를 듣고 있다. 베드로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이는 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를 것을 상징한다. 베드로 앞에 앉아 오른손에는 돈주머니를 쥐고 왼손은 예수님과 같은 그릇에 닿아 있는 사람은 가룟 유다다.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팔 것을 암시한다. 다빈치는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구별하여 머리 위치가 가장 낮게, 얼굴 표정은 가장 어둡게 표현했다고 한다.

왼쪽 끝에서 식탁에 두 손을 짚고 반쯤 서 있는 사람은 바돌로매다. 이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두 손을 들어 놀라워하는 안드레가 위치해 있다.

예수님의 왼쪽 가까이에 앉아 양팔을 벌리고 있는 인물은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다. 야고보 뒤에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사람은 도마다. 도마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배신자가 자신은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야고보 옆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는 사람은 빌립이다.

오른쪽 끝에 위치한 그룹은 마태, 다대오, 시몬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을 향해 두 손을 뻗은 채 다대오와 시몬을 보고 있고, 마태와 함께 시몬을 보고 있는 다대오는 한 손은 힘없이 식탁 위에 올리고 한 손은 믿을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시몬 역시 갑작스러운 사태에 믿기 힘들다는 제스처를 하고 있다.
다빈치의 친구였던 이탈리아의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Luca Pacioli)는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감상한 후 “그 어느 화가도 레오나르도만큼 예수의 배신 언급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자들 간의 표정과 자세들은 마치 우리가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과 같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당시 예수님과 사도들의 머리에 후광을 그려넣는 화풍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를 추구했던 다빈치는 후광 대신 예수님의 머리가 위치한 창밖의 배경을 밝게 묘사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눈 시각이 해가 저문 후 저녁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6:20, 마가복음 14:17). 실제로 하나님이 정한 유월절 날짜와 시간은 성력(聖曆, Sacred Calendar) 정월 14일 저녁으로, 그날은 무교절의 첫날이었다(출애굽기 12:1~18, 레위기 23:5, 민수기 28:6, 마태복음 26:17, 마가복음 14:12).
성경 속 최후의 만찬 이야기
유월절 준비와 최후의 만찬 음식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장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6:20~29, 마가복음 14:17~25, 누가복음 22:14~38, 요한복음 13:3~17:26). 무교절의 첫날인 유월절이 되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을 어디에 마련하면 좋을지 묻는다. 예수님이 이른 대로 마가의 소유로 알려진 큰 다락방이 준비되었다.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만찬을 나누었다. 그날 밤 예수님은 공회에 잡혀가서 밤새 심문을 받은 후 다음 날인 무교절에 십자가에 희생되었다. 그날의 만찬 석상에서 가르치신 말씀이 곧 유언이었던 셈이다(히브리서 9:16~17).
사복음서에 기술된 그날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준비하고, 저녁이 되어 다락방에 모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식탁에 앉아 만찬을 나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유다를 지목하며 배신할 것을 예고하고, 유다는 만찬을 하는 도중에 밖으로 나간다(마태복음 26:21~25, 마가복음 14:18~21, 누가복음 22:21~23, 요한복음 13:21~30).
주목할 점은 그날 만찬상에 차려진 음식이 유월절 양고기가 아닌 떡과 포도주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랐음을 피력하면서 심오하고 특별한 약속을 하셨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예수님의 새 언약에 따르면,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셈이 된다. 예수님은 그보다 먼저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신 적이 있다(요한복음 6:53~55). 예수님은 이 가르침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는지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자리에서 몸소 본보이신 것이다.
유월절에 세운 예수님의 새 약속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요한복음 11:55). 예루살렘은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유월절 당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을 좇아 어린양을 잡아 양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고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당시 유월절에 희생된 양이 256,500마리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양 1마리를 10명이 나누어 먹었다고 가정할 경우 예루살렘에 모인 수는 대략 2백만 명이 넘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은 당시 유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유월절을 지켰다. 예수님이 본보인 예식은 유대교적 전통을 잇는 듯하면서도 그 전통을 완전히 깨뜨리고 초월한 형태였는데, 실상은 구약 유월절 제사의 완성이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가르치셨다(마태복음 5:17~18).
예수님은 새로운 예법의 유월절을 본보이시고 다음 날 십자가에 피 흘려 희생하심으로 그 유언의 효력을 발생시켰다(히브리서 9:16~17). 이런 의미에서 사도들은 유월절 양의 실체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희생되기 전 최후의 만찬을 나누며 본보이신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켰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고린도전서 5:7~8)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린도전서 11:23~25)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했던 최후의 만찬은 단순한 저녁식사가 아니었다. 그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음식은 세속의 것이 아닌 성찬이었다. 유월절 저녁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예식을 가리켜 성찬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예수님의 약속에 따라 유월절 성찬에 참여하는 자가 죄 사함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유월절에 행해야 할 성찬 예식은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2세기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로마교회(지금의 가톨릭)가 유월절이 아닌 부활절에 성찬을 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교회 감독들과 로마교회 감독들 간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시아와 로마교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A.D.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가톨릭 주교들이 회합한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는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로마교회의 주장을 채택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월절 날짜는 성력 1월(그레고리력(태양력) 3~4월경) 14일인데, ‘춘분 후 만월 후 오는 일요일’에 성찬을 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기독교 달력에서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성경의 관습을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킨 사람들은 ‘십사일파(Fourteenthers)’라는 의미의 ‘Quartodeciman’으로 불리며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현재까지 많은 교회에서는 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한다. 물론, 부활절 날짜도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성화 ‘최후의 만찬’이 묘사하는 성경의 중대한 날 유월절이 오히려 교회사에서 사라진 것은 아이러니하다.
[관련 영상]
[참고 자료]
1. Web Gallery of Art
2.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인물세계사
3. 같은 주제 다른 해석: 미술사 속 ‘최후의 만찬’, 《경북매일》, 2021. 7. 5.
4. 다빈치 서거 500주기와 ‘최후의 만찬’, 《중앙일보》, 2019. 5. 3.
5.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크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6. The Flavius Josephus Primer Home Page
7. 《교회사 초대편》, 윌리엄 완드(John William Charles Wand), 대한기독교서회


